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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버섯/버섯이야기

트뤼프이야기-2-

by 우산돌이 200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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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에서의 긴 식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흐믓했으나,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못 생겼지만 맛이 좋아 금값으로 거래되는 보클뤼즈 산 신선한 송로(버섯의 일종)가 막바지 철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송로의 세계는 비밀에 싸여 있지만 카르팡트라스 주변 마을에 가면  외지 사람도 송로가 거래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그 지역 카페에서 마르나 칼바도스 산 사과주를 겉들인 아침 식사 시간에 잠깐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그러다 낯선 얼굴이 문으로 들어서면  웅성거리던 대화가 갑자기 멈춘다. 바깥에는 몇 명씩 모여 서성대면서 감시하고,마침내 땅에서 갓 캐온 혹투성이 덩어리가 전달되면 냄세 맡는 일에 골몰하고 있던 사내들이 엄숙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무게를 달곤 한다. 100, 200, 혹은 500프랑은 됨직한 꼬깃꼬깃한 지폐들로 두툼한 뭉치들이 오가고 흔히는 손가락에 듬뿍 침을  발라 가며 한 번 더 세어 본다. 외지 사람들의 판심을 갖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공식적 시장은 사실 암거래 과정의 초기 단계다. 좀 더 발전하면, 별 세 개짜리 식당 식탁이나 엄청나게 비싼 파리의 포숑이나  에디아르 식당의 바에 앉아 얘기가 진행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진행되든 간에, 손톱 밑에 때가 끼고, 어제 먹은  마늘 냄새가 아직도 숨결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들, 여기저기 찌그러진 채 헐떡거리며 달리는 차를 타고 와 세련된 서류 가방 대신 낡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한테서 직매입한다 해도 가격은, 그들이 즐겨 쓰는 말로 하면, ‘아주 엄청나다’. 송로는 무게 단위로 팔리는데 표준 단위는 킬로그램이다. 1987년 시가를 보면, 마을 시장에서 송로 1킬로그램을 사려면 최소한 2000프랑-그것도  즉석에서 현금으로-은 있어야 한다. 수표는 통용되지 않고 영수증도 교환하지 않는다. '송로를 취급하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소득세라고 부르는 멍청한 정부 계획에 적극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킬로당 2천 프랑하는 송로 값이 여러 대리점과 중간상인들의 손에서 주물러지는 과정을 거쳐 보퀴즈나 트르와그로 같은 식당의 부엌, 송로의 정신적 고항이랄 수 있는 부엌에 당도할 때쯤이면 그 가격은 거의 두 배로 뛰어 있다. 포숑에서는 킬로당 5천프랑의 가격에 육박하지만 그  곳에선 그래도 수표를 받아 준다.

  이처럼 불합리한 가격이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계속해서 상승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분명히 신선한  송로만한 맛이나 향을 내는 것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 다시 말해 오직 그것만이 그런 맛과 향을 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인들이 벌여 온 온갖 노력과 재간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들은 송로를 재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력은 계속되고 있고 보클뤼즈에 가면 접근 금지 경고판까지 나붙은 송로 키우는 떡갈나무 밭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송로가 번식되는 과정은 '자연적'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우연적인 과정인 모양이어서 -그리하여 그 희귀성과 가격이 더 높아진 거겠지만- 현재까지 송로를  키우려는 시도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별 돈 들이지 않고 송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빆에   없는데. 그것은 손수 송로를 찾아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다행히도 운이 좋아서, 우리 집에 거주하다시피 하는 송로 전문가, 미장이 라몽으로부터 송로 찾는 기술에 관한 교양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다년간 별별 방법을 다 써보았다는 그는 몇 번인가 소박한 성공도 거둔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남에게 뭔가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해서 회반죽을 문지르거나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우리가 할 일을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어디에 가면 송로가 있다는 건 말해 주지 않았지만 사실 그것까지  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송로를 찾기 위해선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야 한다. 그가 말했다. 타이밍과 지식, 끈기,그리고 돼지 한 마리가 있어야 하고, 훈련된   사냥개나 지팡이도 있으면 좋다. 송로는 땅 밑에서 몇 센티미터 아래, 혹은 특정 떡갈나무나 개암나무 뿌리 위에서 자란다. 11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 송로 철에는 민감한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냄세로도 송로를 추적할 수 있다. 제일 뛰어난 송로 탐정은 돼지다. 돼지는 선천적으로 송로를 좋아하고, 이 경우 녀석들의 후각은 개의 후각보다 더 뛰어나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림돌이  있으니 돼지는 송로를 발견해도 꼬리를  흔들거나 가리킬 줄 모른다는 점이다. 녀석은  그걸 먹고 싶어 한다. 아니 먹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게다가, 라몽의 말에 의하면, 식도락의 황홀감에 빠진 돼지에게서 이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쫓아내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뿐더러, 한 손으로 송로를 구조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돼지를 막아내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소형 트랙터 만한 녀석이 돼지다운 결의로 꽉 차 한 치도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들은 우리로선, 그런 이유로 돼지보다 가볍고 한결 순종적인 개가 점차로 인기를  얻어 가고 있다고 라몽이 말했을 때 별로 놀라지도 앉았다.

   돼지와 달리 개는 송로를 찾아 헤집고 다니는 본능이 없다.

그러므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 부분에서 라몽이 추천한 방식은 '소시지' 훈련법이다. 소시지를 조금 잘라  내 송로에 대고 비비거나 송로 주스에 잠깐 담궜다 낸 다음 개한테 준다. 그러면  개는 송로   냄새를 천국과의 맛과 연결시키기 시작한다. 영리한 동시에 미식가 기질도 있는 개라면, 점차적으로 일취월장하듯 주인과 마찬가지로 송로에 미치게 되고, 야외실전 준비를 갖추게 된다. 당신의 훈련이  철저했다면, 당신 개가 기질적으로   그 작업에 잘 맞는 경우라면, 또 당신이 어디로 가면  될지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보물이 묻힌 곳으로 정확히 안내해 줄 '송로 전문 개'를 하나 얻은 셈이 된다. 그런 연후에 개가 송로 묻힌 곳을 파기 시작하거든 소시지 조각 하나를  뇌물로 던져 주어 녀석을 쫓아 버리고 검은 황금덩어리 송로를 캐내면 된다.

   이런저런 실험 끝에 결국 라몽 자신은 새로운  방법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지팡이 기술이란 것인데, 그는 자기 앞에 가상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 같은 자세로 가만가만 부엌을 가로 지르며 우리에게 실제 동작을 보여 주었다.이 경우에도 역시 목적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쓸 때는 적절한 기상 조건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떡갈나무 같아 보이는 나무 뿌리에 햇살이 드는 경우를 보거든 조심조심 다가가서 지팡이로 뿌리 근처를 가만히 찔러보라. 놀란 파리 하나가 나무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날아오르거든 그 자리에 표시를 하고 파기 시작한다. 어떤 땐 파리들 때문에 방해를 받기도 할 것이다. 파리란 놈들은 유전적 본능으로 송로 위에 알을 까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에, '딱히 뭐라고 할 순 없는' 어떤 것이 송로의  풍미에 더해지는 건 분명하다) 지팡이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은 돼지를 데리고 다니는 것보단 눈에 덜 띄고, 게다가 비밀이 보장되기 때문에 보퀼뤼즈의 많은 농부들이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송로 캐는 전문가들은 자신만 아는 출처를 지키고 싶어 하니까.

    송로 캐기는 주로 우연에 의존하고 예측 불가능한 작업이긴 하지만. 판매 과정이나 분배 과정의 속임수에 비하면 상당히 정정당당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라몽은 연신 눈을 꿈뻑거리며 내 가슴을 쿡쿡 찔러대면서. 흑막을 캐내는 르포 기자처럼 송로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의 공공연한 속임수 상술에 대해 얘기해 줬다 .

    프랑스의 모든 먹거리에는 최고의 것을 생산하기로 이름난 특정지역들이  있게 마련이다. 니옹은 최고의 올리브로  유명하고, 디종은 겨자, 카바이용은  멜론, 노르망디는 크림 등등, 최고 품질의 송로는 페리고르 지방에서 생산된다는 데도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어  그 지방 송로에 당연히 값을 더 쳐준다. 그러나 카오르에서 산 송로가 거기서 수백 킬로  떨어진 보클뤼즈에서 캐내 온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그 공급업자를 잘 알고 신뢰하지 않는 한 절대 안심할 수 없다. 라몽의 극비 정보에 의하면 페리고르에서 팔리는 송로의 50% 가량은 '귀화해 온' 타지방 물품이다.

   거기에다, 송로와 관계된 괴씸한 비즈니스까지 있다. 땅바닥에 있을 때와 저울에 올려졌을 때 송로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다. 선물 상자로 포장할 때 송로에다 쓸데없는  흙을 더 처발라서 무게를 늘이기도 하고, 송로 안에다 무게 나가는 물질을 교묘히 집어넣기도 한다. 그런 물질은 그냥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칼로 송로를 반쯤 잘랐을 때야 비로소 자그만 금속 조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런 놈들은 전형적인 악당이죠!' 그리하여 차라리 신선한 송로의 풍미는 포기하고 갖가지 캔 제품이 제공하는 안전 쪽을 택하기로 했을 때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프랑스 상표가 붙여진 프랑스제 캔 가운데는 실제 내용물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송로로 채워진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거기서 보는 이익이야 엄청나겠지만, 유럽 공동 시장 소속 나라들이 공표한 협력 조항엔 심각하게 위배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더 망칙해지는 수법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의 코는 송로에 사족을 못 쓰고 자기 호주머니를 터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찾는 이 지역 식당 한 군데서 시즌 마지막까지 송로를 제공하고 있단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셰 미셜'은  카브리에르 마을의 바 겸 식당으로서 불르 게임(쇠공으로 하는 남프랑스 식 구슬치기) 클럽의 본부이기도 하다. 이 집은 미쉐린에서 나온 심사원들의 관심을 끌 만큼 그렇게 치장되었거나 호화롭진  않다. 식당  문쪽 테이블에선 노인들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고. 손님들은 안쪽 테이블에서 잘도 식사를  한다. 주인은 요리를 하고, 그의 아내인 마담이 주문을 받으며, 마지  가족들은 식탁과 부엌에서 일을 돕고 있다. 그야말로 수수 한 지방의 음식점일 뿐, 솜씨 있는 조리사대신 상표명을 앞세워 쾍적한 식당을 음식값이 많이 드는 미식가 놀음판으로 바꿔 놓는 상술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마담이 우리를 자리에 앉히곤 마실 것을 내왔다. 우리는 송로 요리가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 댔고, 고통에 가까운 표정이 한순간 얼굴을 스쳤다. 우리는 송로가 다 떨어져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세상일이 부조리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 미셸은 신선한 송로로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그에게 정해 놓고 송로를 대주는 공급업자도 있는데, 그 때마다 그는 모두들 그러하듯 현찰로, 영수증을 받는 혜택도 포기 하고, 물건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합법적인 사업 비용만 막대하게 들어갈 뿐, 수지 타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출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뒷받침돼 주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송로 요리 가격을 올리려고도 않는다. 송로값을 고려 해선음식값을  올리자면 판골 고객을 화나게 만들 수준으로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겨울 손님은 주로 돈이 넉넉지 못한 이 곳 사람들이고, 큰손들은 부활절 연휴이전엔 잘 내려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바로 이런 점이 문제였다. 수천 프랑의 값어치가 있어 보이는 진짜 송로가 가득 든 구리 팬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마담은 태연한 척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셸이 왜 그런 손해나는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몸짓-어깨와 눈썹이 동시에 위로 올라가면서, 한쪽 입가는 아래로 쳐지는-을 해 보였다.

    "푸르 페르 플레지르(그이의 기쁨이죠)."

    그녀가 대답 했다.

    우리는 오믈렛을 먹었다. 그것은 촉촉하고 두툼했고 솜털처럼 부드러웠으며 한입 한입  씹을 때마다 작고 까만 금덩어리 같은 송로 조각에서 겨울의 마지막 화려한 맛이 느껴졌다. 우리는 빵으로 접시를 싹싹 닦고 나서 런던에서 이처럼 먹었다면 과연 얼마나 돈이 들었을까 추측해 보려 애썼고, 마침내 우리가 바겐세일 가격으로 먹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로방스에서 제 아무리 사치스럽게 썼다 해도, 런던에서의 씀씀이와 비교하면 모든 게 정당화되는 것이다.

    식당 안을  둘러보러 미셸이 부엌에서 나왔다. 깨끗하게  닦아 먹은 우리 접시를 보고는 뭍었다.

   "맛있었어요? 송로?"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한테 송로를 대주는 업자 -사업 분야에선 고참 악당 중 하나인데- 가 얼마 전에 강도를 당했다고 말했다. 자그마치 10만 프랑 넘는 현금으로  가득 찬 송로 상자 하나를 도둑이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그 업자는 돈을 잃었다고 떠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 돈이 어디서 난 거냐는 당혹스런 질문이 나올까 두 려워서였다. 지금 그 자는 죽겠다고 끙끙거리고 있단다. 내년엔 아마 송로 값을 더 올릴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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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의 1년" (피터메일 지음/ 진선출판사/ 1996년10월30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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